소소하고도 위대한 오늘. 병동일기

행복하다. 이틀 전 행복감에 두 번 울었다. 퇴원 소속을 밟고 스테이션에 있는 간호사들에게 간단히 목례하고 나오는데 눈물이 주룩 흘렸다. 예전에도 이 병원을 나오는데 그랬다. 하지만 그땐 다 낫지 않은 아버지를 다른 병원으로 오기는 것뿐인, 전원에 불과했기에 서러움과 막막함에서 나오는 눈물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질 것 같았던 전쟁에서 이겨 집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집에 와 외식을 하러 아버지 손을 잡고 동네 길을 걸어갈 때 또 한 번 울었다 정말 몇 주 전만 해도 불가능해보였다. 아니, 생각도 못했다. 이 소소하고도 위대한 행복감,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벅차오름이었다.

오늘도 아버지는 원래의 부지런한 모습으로 돌아와 집안 곳곳을 정리하신다. 너무너무 다행이다.

올해는 좋은 일만 생길 거야. 이 감정 잊지 않을래.

잠이 오지 않는 이유. 병동일기

1.
두달이 넘는 병원생활을 끝내고 내일 퇴원한다. 지금 가장 잠이 오지 않은 이유는 감개무량해서이다. 아버지는 예전모습을 되찾으려면 무수한 의학적, 생활적 재활치료를 거쳐야 할 것이다. 특히 인내심, 참을성이 극도로 부족해져서 예전의 품위와 점잖음을 많이 잃어버리셨다. 그래도 뇌를 심하게 다쳤음에도 마비 없는 상태에 감사할 따름이다.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2.
오늘밤은 그리고 왠지 불안하다. 아버지가 갑자기 요 며칠 잘 찾던 병실 안 화장실을 못찾으신다. 약간 비틀거리며 걷는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으면 안되겠다.

3.
꼬맹이가 계속 칭얼된다. 모야모야병과 비슷한 혈관기형으로 그제 압원한 8살짜리 남자아이다. 엄마는 외모나 말투로 보아  동남아 여성이다. 꼬마가 여기 와서 가장 많이 한 말이 아파, 이다. 지금도 이 말을 무한반복한다. 가엾기도 하고 지나친 엄살쟁이 같기도 하다.

4.
서운한 일이 있다면 좋은 느낌의 그 사람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 시원시원한 일처리와 그에 어울리는 싱그러운 미소가 한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우리 아버지를 돌봐준 고마운 분이다.

웃고 싶지 않은 날. 병동일기

때로는 지겹다. 병원 생활이. 무료함과 함께 막막함이 느껴진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 아버지의 병세는 언제쯤 좋아질 것인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소확행으로 시작한 글쓰기도 금세 멈추었나보다.

1월말에서 2월초까지 아버지의 상태는 절정에 달했다. 뇌를 다친 환자는 다 그렇다는데, 심했다. 각종 헛소리와 이상한 행동들이 버거웠다. 가여우면서도 화가 났다. 견디기 힘들었다. 도망가고 싶고 아버지가 미웠다. 새벽녘 아버지에게 쌍욕을 들었을 때, 간호사실에서 머리 를맞았을 때는 정말 불꽃 같은 분노가 가슴에 새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2월 1일 복원술을 계기로 아버지의 뇌는 혼란에서 안정 단계로 접어든 듯하다. 여전히 날짜도 헷갈려 하고 장소도 모르고(자꾸 예전 직장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화장실 위치도 헷갈려 하지만 아직 여러모로 혼자 둘 수 없지만. 가끔 생각해 본다. 우리 아빠는 언제쯤이면 혼자 밥도 해 먹고 버스도 타고 마트도 갈 수 있을까. 어느 날 기적처럼 모든 것이 제자리도 돌아왔으면 좋으련만.

내가 힘이 빠졌나 보다. 반복되는 생활이, 상황이 싫어졌나 보다. 스토리도 없는 글을 주저리주저리 쓰는 것보면 그냥 힘들다고 토로하고 싶었나 보다. 따뜻한 위로가 받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다 부질없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감당은 내가 해야 하므로. 그러므로 난 사람들에게 잘 기대지 못한다.

웃고 싶은데, 밝은 표정이고 싶은데 일부러 그러긴 싫다. 아. 함들다. 책이나 뒤적거려야겠다.





앳된 그애를 위하여. 병동일기

지난 12월 어느 아침 119 구급차에 실려온 아버지는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주치의는 나에게 집이 어딘지 묻더니, 응급상황이 생기면 전화할테니 집에 가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하루 아침에 중환자실에서 경과를 지켜봐야 하는 처지가 됐는데 어찌 집에 가랴. 나와 오빠는 중환자실 잎 대기의자에서 밤을 새우기로 했다.

그 하루밤 사이 지나간 죽음과 눈물자국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인턴 의사가 나와 의료진이 몇 십분에 걸쳐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그래도 환자의 가족은 포기하지 않는다. 여의고 나이든 할머니는 손자뻘 의사에게 허리 굽히며 “감사합니다 선생님”이라고 말한다. 살려달란 얘기다. 기적이 일어났으며 잠시 뿐이었다. 또다시 심폐소생술이 시작된 듯 했다.

죽음을 기다리는 가족은 또 있다. 형을 떠나보내려 하는 동생과 남편을 떠나보내려 하는 여자가 만나 울먹거린다. 젊은 아내는 슬프다못해 지친 듯했다. 보아하니 산재인 것 같다. 얼마나 갑작스러운 작별인가. 그들은 새벽녁에 결국 흰 시트에 감싸인 형과 남편을 맞이했다.

이버지를 걱정하는 와중에서도 유독 마음이 쓰였던 이는 한 소녀였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그애의 까만 생머리에서는 이 무거운 분위기를 개의치 않고 싱그러움이 풍겨나왔다. 그런 그애의 어머니가 핏기 없는 얼굴로 늦은 밤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그애의 할머니는 며느리 걱정에 눈물을 멈추지 않는다. 그 시간에도 병원에 스무 명 가까이의 가족친지들이 모인 것을 보면 매우 단란한 가정인 듯 했다.

그런 기운 탓인지 그애 어머니는 그날 밤을 넘겼다. 나와 오빠와 그애 가족은 그렇게 중환실 앞에서 그날 밤을 보냈다. 아침이 되어 그애 얼굴을 보니 전날보단 밝았다. 친척아저씨와 도란도란 대화꽃도 피웠다. 하지만 죽음은 그애의 간절한 소망에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하려 그애와 가족들은 오전 중 중환자실로 들어가야 했다.

그 하루 동안 그 소녀와 난 두세 번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애가 이곳에 오는 순간부터 자주 바라봤다. 어머니를 잃으려 하는 그애에게 한없이 가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열 몇살인 그애가 앞으로 얼마나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살지 가늠이 되기 때문이다. 그애는 아마도 어머니가 없는 어느 여자의 모습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시켰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보았다.

지금쯤면 아마도 49재도 지났을 것이다. 그 앳된 눈가에는 여전히 슬픔이 서려 있겠지. 하지만 시간이라는 약이 있으니 그 슬픔도 앞으로 펼쳐질 기쁨에 상쇄될 것이고, 앞으로 겪을 또다른 슬픔에 밀려 차차 가라앉을 것이다. 오늘 문득 그애가 떠올랐다. 잘 지내는지.

너에게 안부를 물을 수 있다면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 흔들리는 풍경은 그저/우리들의 이야기 되고/다가오는 폭풍은 그저/또 하나의 노래가 되네..(청춘시대2 ost 오늘 같은 날이면-드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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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인 (Drain) - 오늘 같은 날엔











아빠의 화려한 스킬. 병동일기

밥 시간이 되면 아부이 식사, 내 식사(보호자 식사)가 담긴 쟁반을 들고 와서 병실 침대에 달린 탁자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는다.  

오늘의 주메뉴는 생선까스. 아부이의 젓가락은 생선까스로 향하는데...으응?

“아빠, 그건 내껀데?!”(ㅠㅠㅠㅠ)

아부이는 당신 앞에 있는 생선까스를 굳이 패스하시고는 내 식사 쟁반에 있는 생선까스를 집어드신다. 근래 들어 자주 있는 일. 하지만 나는 앞서 땡땡 여사님으로부터 효녀라는 호칭을 하사받은 바, 아빠 생선까스를 탐하지 않았다.(당분간 효녀 코스프레를 할 거임)

그리고 한편으로는 생각한다. 아빠, 일부러 그런 거 아니지? 몰라서 그런 거지? 아빠에겐 아빠 생선까스가 더 가까웠다는 건 함정.

덧붙임) 요건 음식밸리로~데힛.

여사님들과의 라포르 병동일기

사회생활 몇 년 하더보면 거기 실세가 누군지 빨리 파악하는 게 꽤나 도움된다. 병동에서는 당연히 의느님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회진 이후는 집도의도, 주치의도, 인턴도 사라지는 ‘무의촌’이 되는지라 실세라고 하긴 어렵다.

그러면 누구냐, 병실의 주도권은 간병인 여사님들(남자 간병인들도 있지만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주로 여사님들)이 쥔다.

울 아부이는 고대구로병원 응급실>응급중환자실>준중환자실>수술방>중환자실>준중환자실이라는 고된 여정을 거쳐 작년 12월 십며칠경 일반병실로 갔다.

주섬주섬 짐을 풀고 있는데 간병인 여사님이 이것은 이래라, 저것은 저래라 한다. 웬 참견이냐 싶어 건성건성 대답했다. 연세에 비해 피부가 보톡스 맞은 마냥 땡땡했으로 편의상 땡땡 여사님이라고 부르겠다.

대충 눈인사나 하며 지내던 땡땡 여사님과 라포르를 쌓은 건 깡말라 어린애처럼 조그마해진 한 할아버지가 아부이 바로 옆 침대로 입원하고서부터다.

여느 밤처럼 자지 못하고 뒤척이던 그날 밤 쾅 소리가 나서 벌떡 일어나 보니 할아버지가 침대 옆에 넘어져 있는 게 아닌가. 바로 비상벨을 누르고 간호사를 불렀다. 그렇지 않아도 한 시간 전 바닥에 주저앉아 쓰레기통에 토악질을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본 터라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던 차였다.

할아버지는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뭔가 다급히 말했고 자세히 보니 자신의 몸보다 더 커봬는 폴대 밑에 깔려 있었다. 나는 침대 너머로 손을 뻗어 폴대는 잡아 일으켰으나 바로 세우기는 역부족. 마침 잠에서 깬 땡땡 여사님이 오셔서 폴대를 세워주셨다.

간호사도 달려왔다. 이러저러한 얘기를 들어보니 할이버지는 대장암 말기고 수혈을 하고 있었는데 메스꺼움 때문에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변을 당한 모양이다. 같이 온 아들은 그 시간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지하 1층 의자에서 자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궁시렁 대기만 하는 간호사를 도울 마음은 1도 없었지만 할아버지가 안쓰러워 간호사 대신 수혈 피가 잔뜩 묻는 침대 시트를 갈았다. 땡땡 여사님은 화장실로 가더니 연변 말투로 “바닥이 엉망이다”며 솔선수범 물청소를 했다. 그제서야 도망간 아들놈이 돌아오더니 또 할아버지 옆에서 잠만 쿨쿨 잔다.(난 그를 보고 조선 천하의 개자식이라고 속으로 욕했다. )

그렇게 뜻하지 않은 인명구조의 현장(?)에서 투합했던 땡땡 여사님은 그날 아침 사과도 깎아주고 나에게 그 아들놈은 욕하면서 “이집 아들 딸은 효자효녀다”라는 칭찬도 던져주셨다. (하지만 나도 찔리는 게 있는지라 어색한 웃음만 흘렸다능)

두번째 라포르는 바로 어제 밤, 이곳 재활병원에서다.  여기도 연변 동포로 추정되는 삼각김밥 머리 모양의 여사님이 계시다. 역시 어색한 인사만 나누는 사이였는대 역시 같은 방 한  할부지 덕분에 인연을 맺게 됐다. 이 할부지가 설사병에 걸렸는지 시도때도 없이 푸륵 푸릉 하신다. 냄새는 OMG. 간호사실 앞 휴게공간으로 도망나오니, 삼각김밥 여사님도 나와서 내 옆에 앉으신다. 그렇게 우리는 고약한 냄새를 잠시나마 뒷담화했다.

아 이번 달이면 또 병실을 옮길텐데 그때는 또 어느 여사님과 마음을 나눌까.

덧붙임) 라포르(Rapport)는 프랑스어로 사람 사이에 생기는 상호신뢰관계를 말한다. 흔히들 라뽀라고, 병원에서 많이 쓴다. 의료진과 환자들 간의 신뢰를 뜻하며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와 ‘라뽀를 쌓는다’라고 말한다.


낯빛이 납빛 병동일기

무심코 내 얼굴을 거울로 봤는데 정말로 심쿵(심장 쿵;;)했다.

무슨 처자의 얼굴이 탄광촌에서 막 나온 아재 같단 말인가. 괜히 불빛 없는 화장실 탓이라 여겨보지만 내 안구에 눈물이 차올라 바닥에 넘칠 지경이다.

고대구로병원에서 나의 얼굴이 뽀샤시해보였던 건 아이보리 희뿌연 조명 탓이었던가. 어쩐지 카메라앱을 쓰지 않아도 셀카가 잘 나오더니만.

대한민국의 지나친 의료불균형을 비판했건만 대학병원, 대학병원 하는 이유가 다 있었다. 나중에 아프면 무조건 조명 빠방한 대학병원에 입원하겠다. 캬캬. 병원 곳곳에 곱고 잘생긴 인턴 레지던트 썬상님들이 많았던 것도 조명탓이었나.

솔직히 잠을 잘 못자겠다. 생각해보면 좁은 공간에 8명이 같이 자는 셈이나 군대 내무반을 방불케 한다. 그래도 군대는 공짜로 베개와 이불이 제공되건만 환자 아닌 보호자에게 그런 건 없다. 나는 이까이꺼 대충 하는 성격에 한달이 넘도록 베개 없이 담요 한장으로 버티고 있다.

다행이 우리 내무반(?)엔 코골이가 없지만 어느 병실 할부지가 밤새 어-어- 거리신다. 거기 사람들은 귀머거리 아닌 이상 잠은 다 잤다. ㅠㅠ  나도 전원하기 전에 있던 병실에서 당해봤지만 모 간병인 아저씨는 정말 에너자이틱하게 밤새 코를 골았다. 소리에 유독 예민한 나로써는 병원생활은 노답이로소이다.

지금 병원으로 옮기기 전엔 갑작스런 우울이 찾아오기도 했다. 샤이니 민호 닮은 아부이의 주치의 쌤과 헤어져서가 결코 아니다. 완쾌되어 퇴원하는 것도 아니고 또 병원생활 하려니 서글프고 만날 수 없는 어무니도 보고싶고 아빠는 여전히 애 같고.

그래도 나는 자타공인 적응의 동물, 처음에는 아빠 밥 , 내밥 식판을 따로 날랐지만 능숙한 간병인 쌤들을 본받아 한 번에 겹쳐 나른다. 머리감기부터 샤워까지 10분이면 끝.

그리하여 감수성이 폭발 직진인 나는 나의 쪼매난 행동에도 감동받아 그래도 이 정도면 잘 하고 있는 거 아닌가..스스로의 어깨를 두드려 본다.

덧붙임. 이 우울의 시기를 모르고 우연히 들러준 나의 전 직장 선배 동기 후배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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