앳된 그애를 위하여. 병동일기

지난 12월 어느 아침 119 구급차에 실려온 아버지는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주치의는 나에게 집이 어딘지 묻더니, 응급상황이 생기면 전화할테니 집에 가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하루 아침에 중환자실에서 경과를 지켜봐야 하는 처지가 됐는데 어찌 집에 가랴. 나와 오빠는 중환자실 잎 대기의자에서 밤을 새우기로 했다.

그 하루밤 사이 지나간 죽음과 눈물자국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인턴 의사가 나와 의료진이 몇 십분에 걸쳐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그래도 환자의 가족은 포기하지 않는다. 여의고 나이든 할머니는 손자뻘 의사에게 허리 굽히며 “감사합니다 선생님”이라고 말한다. 살려달란 얘기다. 기적이 일어났으며 잠시 뿐이었다. 또다시 심폐소생술이 시작된 듯 했다.

죽음을 기다리는 가족은 또 있다. 형을 떠나보내려 하는 동생과 남편을 떠나보내려 하는 여자가 만나 울먹거린다. 젊은 아내는 슬프다못해 지친 듯했다. 보아하니 산재인 것 같다. 얼마나 갑작스러운 작별인가. 그들은 새벽녁에 결국 흰 시트에 감싸인 형과 남편을 맞이했다.

이버지를 걱정하는 와중에서도 유독 마음이 쓰였던 이는 한 소녀였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그애의 까만 생머리에서는 이 무거운 분위기를 개의치 않고 싱그러움이 풍겨나왔다. 그런 그애의 어머니가 핏기 없는 얼굴로 늦은 밤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그애의 할머니는 며느리 걱정에 눈물을 멈추지 않는다. 그 시간에도 병원에 스무 명 가까이의 가족친지들이 모인 것을 보면 매우 단란한 가정인 듯 했다.

그런 기운 탓인지 그애 어머니는 그날 밤을 넘겼다. 나와 오빠와 그애 가족은 그렇게 중환실 앞에서 그날 밤을 보냈다. 아침이 되어 그애 얼굴을 보니 전날보단 밝았다. 친척아저씨와 도란도란 대화꽃도 피웠다. 하지만 죽음은 그애의 간절한 소망에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하려 그애와 가족들은 오전 중 중환자실로 들어가야 했다.

그 하루 동안 그 소녀와 난 두세 번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애가 이곳에 오는 순간부터 자주 바라봤다. 어머니를 잃으려 하는 그애에게 한없이 가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열 몇살인 그애가 앞으로 얼마나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살지 가늠이 되기 때문이다. 그애는 아마도 어머니가 없는 어느 여자의 모습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시켰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보았다.

지금쯤면 아마도 49재도 지났을 것이다. 그 앳된 눈가에는 여전히 슬픔이 서려 있겠지. 하지만 시간이라는 약이 있으니 그 슬픔도 앞으로 펼쳐질 기쁨에 상쇄될 것이고, 앞으로 겪을 또다른 슬픔에 밀려 차차 가라앉을 것이다. 오늘 문득 그애가 떠올랐다. 잘 지내는지.

너에게 안부를 물을 수 있다면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 흔들리는 풍경은 그저/우리들의 이야기 되고/다가오는 폭풍은 그저/또 하나의 노래가 되네..(청춘시대2 ost 오늘 같은 날이면-드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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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인 (Drain) - 오늘 같은 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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